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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아있는 전설 "잭 와틀리" 근황
작성자 최희곤 (ip:121.172.36.148)
  • 작성일 2014-12-18 22: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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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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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디스커스는 디스커스의 전설이라고 하는 두사람으로부터 시작이 되었고 그들로부터 개량디스커스가 시작되어 지금의 여러종류의 현란한 개량이 탄생하는 시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분은 독일의 슈미트 포케 박사신데 이미 십몇년전에 작고를 하셨고 또 한 분은 사진에 있는 잭 와틀리입니다.

아직도 종종 와틀리 디스커스라고 분양란에 보이곤 하는데 이제는 은퇴하신지 오래되신 분입니다.

 

1924년 10월 미국의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서 태어나셨으니 우리나이로 91세이고 곧 92세가 되네요.

구부정하시지만 아직도 정정하신 모습이고 간혹 디스커스 컴피티션이나 강연회에 모습을 나타내고 트로피칼의 사료제조에 고문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분은 어려서부터 물고기 키우는것을 좋아하셨는데 본래 직업이 디스커스 브리더는 아니었고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서 3개의 옷가게를 운영하는 비즈니스를 했습니다. 1958년 처음으로 야생의 디스커스를 획득하고 그 모습에 심취를 하였고 매니아들이 그렇듯이 좀 깊게 빠졌나 봅니다. 드디어 1963년 그당시에는 정말 말도 못할 정도의 오지였던 아마존강으로 탐사를 나가서 야생의 디스커스를 채집하고자 합니다.

육로로 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한 먼 길이고 식인종도 있고 야생의 맹수들도 우글거리는 아마존의 탐험을 위해 비행기를 이용하게 되는데 여기서 만나 프랑스인 파일럿 들에게 영어를 가르켜주기로 하고 테페로 날아갑니다.

이때 타고 다닌 비행기는 6인승의 정말 작은 프로펠라 비행기인데 이 비행기를 타고 테페강으로 가서 그린 디스커스를 채집을 하고 이후 마나카프루에 가서 블루 디스커스를 채집합니다.

 

이렇게 채집한 디스커스를 미국의 마이애미로 가져와서 본격적인 브리딩을 하는데 야생 테페그린과 마나카푸르 블루 사이에서 우리가 지금까지도 열심히 키우고 있는 터콰이즈가 탄생을 하게 됩니다.

첫 배에서는 대체로 그린이 많이 나왔는데 이후 블루계열이 나타나면서 터콰이즈 블루의 시초가 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터콰이즈를 최고의 디스커스로 손 꼽고 있습니다.

 

이 분의 전설중에 또 다른것이 디스커스의 인공부화를 시도하여 성공을 하고 그것을 정립하였다는것 입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따라하고 있겠지만 난황과 스피룰리나 분말을 가지고 시도하여 성공을 하였고 용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흰색의 용기에서 훨씬 더 인공사육이 쉽게 된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는데 제 개인적 생각은 그런 시도도 중요하고 성공도 칭찬받을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내용을 가감없이 트로피칼 투데이라는 잡지에 올려서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는것이 참 존경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보면 월등한 디스커스 실력을 보유했던 분들이 계시고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자유롭게 브리딩을 행하던 실력자들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거나 남은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동남아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참 잘안가르켜주는 문화가 뿌리 깊은것 같습니다.

뭐 하루 이틀된 문화는 아니고 고려청자나 이조백자가 명이 끊긴것도 옹기쟁이들의 쟁이 문화에서 비롯된것이고 도제식 교습법이 횡행하던 시절이니 지금보다 더 했겠죠.

그나마 지금의 우리에게는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가 있어 예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을 합니다.

 

36쌍을 가지고 인공부화로 치어를 키워 올리던 이 분이 분양을 하는데 그 당시 분양가가 6.75us$.

75센트가 뭐냐 ㅋ 이 분이 본래 의류쪽 비즈니스를 하다보니 의류쪽에 공공연하게 75센트가 붙는것이 많았는데 여기서 자연스럽게 오게 된 금액이고 이후 도매상들의 거래에는 이 75센트가 많이 붙었다고 합니다.

1980년이 되면서 일본의 돈 많은 젠틀맨이 미국으로 날아와서 와틀리의 디스커스를 사겠다고 하자 그 당시 경제적으로 잘 나가던 일본이니까 마리당 10.75us$을 불렀는데 흔쾌히 오케이를 해서 일본으로 수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는 항공편이 그리 만만치 않으니 마이애미에서 로스엔젤레스의 친구집으로 보냈다가 친구가 몇 주 축양을 해서 로스엔젤레스 ~ 나리타 항로의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하게 됩니다.

 

1980년부터 1994년까지 잭 와틀리는 매년 일본을 방문하고 강연을 하고 일본의 디스커스 세일즈에 도움을 주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따지고 보면 잭 와틀리의 디스커스는 이때가 황금기였는데 일본의 디스커스를 보고 따라하게 되면서 잭 와틀리의 개체가 국내로 들어오기 시작을 합니다.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잭 와틀리의 혈통이 분명 숨쉬고 있을거라 생각을 합니다.

취미가 되었건 본업이 되었건 어떤 일에나 한 획을 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합니다.

그런 열정 그리고 끝없는 노력이 이루어낸 결실들.

잭 와틀리는 그렇기에 아직도 그를 살아있는 디스커스 전설 또는 Biggest Discus Guru, Godfather of Discus fish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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